남미 영화인인 헥터 바벤코는 기존의 사회질서의 주변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에게 초점을 맞춘, 사회적인 양심 영화로 국제적인 주목을 받아왔다. 특히 바벤코는 1970년대에 브라질의 포스트 시네마 운동의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1946년 2월 7일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이민 온 러시아와 폴란드 유대인계의 가정에서 태어난 헥터 바벤코는 18살에 비트 문학과 실존 철학에 관심을 갖게 된 이래 다양한 직업을 전전하며, 7년 동안 아프리카, 유럽, 북아메리카 등지를 떠돌며 여행한다. 그러다 그는 스페인과 이탈리아계 서부영화의 엑스트라로 잠시 일하게 되는데, 이를 계기로 1971년에 브라질에 정착한 바벤코는 뉴시네마에 관심을 가지고 영화감독이 되기로 결심한다.
그 해에 브라질에 군사정치가 시작되어 영화에 대한 검열이 혹독해져, 뉴시네마의 감독들이 대부분 망명하지만 바벤코는 브라질에 남아 다큐멘터리와 단편 영화, 광고 일을 하면서 영화제작에 대한 기술을 익힌다. 그와 동시에, 그는 데뷔 영화 <밤의 제왕>(75)을 만들었고, 1978년에는 생명의 위협과 적개심을 주제로 한 선동적인 영화 <루시오 플라비오 Lucio Flavio>를 발표한다. 어려운 영화 현실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브라질에서 4번째로 수입을 가장 많이 올린 영화가 되었고, 날로 쇠퇴해 가는 브라질의 영화 산업을 부흥시키는데 큰 공을 세운다.
바벤코가 처음으로 세계적인 찬사를 받은 건, 갑자기 늘어난 브라질의 거리 아이들의 비참한 일상을 기록한 작품 <피쇼테>로, 이 작품은 집이 없는 아이들의 현실을 즉석에서 찍은, 거의 다큐멘터리에 가까운 영화다. 이후 미국으러 진출한 헥터 바벤코 감독은 아르헨티나의 반체제작가 마누엘 푸익의 장편소설을 영화화한 <거미 여인의 키스>(1985)를 만들게 되는데, 이 작품은 형무소에 수감되어 한 감방을 쓰게 된 두 죄수의 이야기를 통해 성의 정체성과 사회혁명이라는 정치적 화두를 신비로운 분위기 속에 담았낸 걸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