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보세가 천재 세공사 00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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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보세가 천재 세공사 1화


그날은 정말 내 인생 최고의 날이었다.

“올해의 주얼리 대상은…. <황룡의 날개>를 만든 공방진 님입니다!”

사회자의 말에서 내 이름이 나왔으니까.


<한국 주얼리 디자인 공모전>


총상금 5억 원.

우수상 이상의 수상자에게는 유럽 유학의 기회까지 있었다.​


‘그랬기에 엄청난 지원자가 몰렸지.’

그 수많은 참가자를 제치고 내가 대상이라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았다.

<황룡의 날개>를 완성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고생을 했던가.

손 그림, 일러스트, 캐드, 왁스, 세공 등등.

할 수 있는 것은 모조리 시도하며, 자는 시간까지 아껴가며 작품을 만들었다.


그리고 오늘.

드디어 나는 그 노력에 대한 보답을 받을 수 있었다.


-와아아!


사람들의 환호성과 박수갈채가 들렸다.

나는 모두의 시선을 받으며, 당당하게 대상을 받았다.

묵직하고 번쩍번쩍한 트로피가 내 양손에 들렸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래, 정말로 최고의 날이었다.


뜬금없이 무림에 떨어지기 전까지는 말이다.


* * *


“…여기가 어디지?”


방금까지만 해도 시상식장에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산속이라니.

나를 향해 환호성 지르던 사람들은 어디 갔단 말인가.


‘트로피는 어디 가고, 공구통이…?’


뿐만 아니라, 오른손에 있던 트로피도 사라지고, 그 자리를 공구통이 대신했다.

마치 비닐봉투를 든 것처럼, 공구통은 가벼웠다.

그게 이상했지만, 지금은 그런 것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


나는 산속에 홀로 있었으니까.

근처에 사람이 있으면 잡고 물어보기라도 할 텐데.

그러나 여기에는 아무도 없었다.

이때만 해도, 나는 무림에 떨어졌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설명해 줄 사람도 없었고, 소설처럼 상태창이 나왔던 것도 아니었으니까.

“살려주세요! 누구 없어요?”


​그래서 나는 산속에서 사람을 찾아 하염없이 걸었다.

이따금 들리는 산짐승들의 울음소리에 정신이 나갈 것 같았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빛이다!”


이대로 산에서 조난당해 죽는 상상을 할 때쯤, 드디어 불을 발견했다.

사람의 흔적이었다.

나는 살았다는 기쁨에 다짜고짜 그곳을 향해 뛰었다.


여긴 어디인지.

혹시 꿈은 아닌지.

왜 내가 여기 있는지 등등. 


사람을 만나면 물어볼 게 한가득이었다.

이 깊은 산속에 왜 사람의 흔적이 있는지는 생각지도 않았다.


“살았…!”


그리고.

그것이 내 실수였다.

무림에 떨어진 이후, 최악의 실수 말이다.

-어그적 어그적.​


“살다 살다, 춘식이가 제 발로 걸어오는 경우가 다 있네잉.”


비릿하게 웃음을 지으며, 걸어오는 남성.

허리춤에 매달린 칼은 유독 빛이 났다.


“네? 저는 춘식이가 아니고, 공방진….”


내가 빛을 발견했다며 무작정 찾아간 곳은.

사람을 납치해서 팔아먹는 인신매매 조직이었다.


“아따, 공방인지 광방인지. 나는 관심이 없고! 인자부터 니 이름은 춘식이여. 춘식이 52호.”

“….”


무림에 떨어진 첫날.

나는 시작부터 춘식이가 돼 버렸다.

그것도 춘식이 52호로 말이다.


* * *


“춘식이 이노옴!! 게 섯거라!”


평음현의 한 골목.

나를 쫓는 포졸들이 연신 고함을 질러댔다.

구름 한 점 없는 밤하늘은 대낮처럼 환했다.

도망치는 내 처지에선 참 재수도 없었지만, 놈들에겐 둘도 없는 호재였다.


“너희 같으면 서겠냐? 그리고 나는 춘식이가 아니라고!”


춘식이 52호가 되고, 1년이 되는 날이었다.


처음 춘식이가 됐을 때, 내심 긴장했다.

어디 광산에 끌려가거나, 마교의 실험체로 팔려갈 줄 알았으니까.

하지만 인간사 결국 능력이 있으면 인정받는 법.

나는 귀금속 세공 능력을 인정받으면서, 세공 춘식이가 됐다.


‘실험 춘식이나, 노역 춘식이보다는 훨씬 편했지.’


마교인지 혈교인지 모르겠으나, 살벌한 놈들에게 춘식이들이 많이 팔려갔고, 그때마다 나는 불안해졌다.

당장이야 나를 부려먹으려고 냅두지만, 언제라도 상황이 바뀔지 몰랐으니까.

그랬기에 나는 필사적으로 탈출의 틈을 엿보며 기회를 노렸다.


‘운이 좋았지.’


그날은 이상하게도 놈들의 경계가 약해진 날이었고, 나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춘식이는 자유예요!”


탈출에 성공했을 때.

처음 생각한 것은 놈들을 관아에 신고하는 것이었다.

멀쩡한 사람을 잡아다 부려 먹은 것에 대한 복수랄까.

하지만.


‘…만약 관아도 한통속이라면?’


이내 생각을 고쳐먹었다.

세상사 혹시 몰랐으니까.

영화나 드라마에서도 범죄조직과 경찰은 한패 아니었던가.

심지어 여기는 인간의 존엄성 따위 없는 무림.

무슨 일이 벌어져도 이상하지 않았다.


‘헛짓거리하지 말자.’


그렇게 결론을 내린 나는 반지를 만들어 팔며, 조용히 지냈다.

그렇게 6개월의 시간이 흘렀고.

그때, 신고하지 않은 내 선택이 옳았다는 것을 확인했다.


“저, 저 새끼들!!”


나를 쫓고 있는 포졸들.

녀석들은 바로 조직 놈들이 ‘형님.’이라며, 한 상씩 거하게 대접했던 놈들이었으니까.


‘빌어먹을.’


자고로 포졸이란, 현대의 경찰처럼 민중의 지팡이 역할을 다해야 하는 법이거늘.

어찌 된 게, 민중의 몽둥이가 백성을 핍박한단 말인가.


‘뇌물만 주면 형, 아우가 되는 세상이 있다?’


상대가 누구건 돈만 바치면, 포졸과 하하 호호 웃으며 형제가 될 수 있는 세상이었다.

문제는 그게 나와는 관련이 없다는 것이다.


“헉, 헉! 멈추래도!!!”


대체 얼마를 약속받았기에 나를 저렇게 잡으려는 걸까.

저 봐라, 이 정도면 포기할 법도 한데, 끝까지 쫓아온다.

뱃살 공주의 발정난 일곱 난쟁이마냥, 더럽게도 헥헥 거리면서 따라오는 포졸들이었다.


“크하하! 나리들, 어제 드신 고기가 아직 소화가 안 되셨나 봅니다? 그렇게 뇌물을 처먹으니까, 못 잡죠!”

체면이고 뭐고. 괘씸해서 팩트로 때렸다.

나라의 녹을 먹었으면, 백성들의 안위를 살펴야지.

인신매매범들에게 뇌물을 받으면 되겠냐고.


“저, 저놈이!!!”

“잡히면 가만두지 않겠다!”

놈들은 면전에서 체면이 깎이자, 얼굴이 시뻘게지다 못해 파랗게 질렸다.


‘지가 신호등이야 뭐야, ‘


산 채로 똥을 먹여주겠네, 상처에 소금 대신 흙을 뿌리겠네 등등.

끝까지 쫓아오는 포졸들의 입에서 온갖 신박한 말들이 쏟아졌다.


“거기 서라니까!!!”

“안 선다니까!!!”


무림에 떨어진 지 딱 1년이 되는 날.

환하게 비추는 달빛 아래 추격전은 계속됐다.

* * *

“하아, 진짜 죽을뻔했네.”

강 저편에서 포졸들이 뭐라고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숨을 고르며 놈들의 모습을 가만히 지켜봤다.


‘쓰레기 같은 놈들. 다시는 보지 말자.’


나는 나룻배에 타고 있었다.

보통의 나룻배라면 포졸이 부르면 즉시 멈춰야 했다.

포졸이 쫓는 건 범죄자라는 얘기였으니까.


‘그러나!’


내가 탄 나룻배는 포졸들의 외침을 개무시했다.

그게 가능한 이유는 나룻배 위의 검은 깃발 덕분.


-펄럭.


저 깃발은 그냥 깃발이 아니라, 바로 수적의 깃발이니까.

수적의 보호 아래 운행되는 나룻배.

비록 요금은 3배나 더 비쌌지만, 돈값은 톡톡히 했다.


-#$#%%!!


포졸들은 수적한테도 뇌물을 받았기에, 나룻배를 건드릴 수가 없었던 거다.

“허, 대체 무슨 죄를 지었길래, 포졸들이 저렇게 쫓아온 거요?”


나룻배엔 선객이 한 명 있었다.

험상궂은 얼굴에 허리춤에 칼을 차고 있었는데, 관상이 범죄자였다.

내가 포졸에게 쫓기자 흥미가 생긴 게 분명했다.


“죄는 무슨! 선량한 피해자입니다. 저는 마을에서 반지밖에 안 팔았다고요. 저것들은 무늬만 포졸이지 인신매매 조직한테 사주받은 놈들입니다!”

“쯧쯧. 외지에서 오셨구만?”


그래, 외지긴 외지였다.

산속에서 한참이나 잡혀 있다가 처음 도착한 곳이 여기였으니까.

“운 좋은 줄 아쇼, 저 마을이 일단 들어가면 가진 건 죄다 털리고, 반항하면 곤장을 때려다가 반병신으로 만들어 버린다지? 사람도 자주 사라졌다고 들었는데. 이제 보니 그런 놈들이랑 연계됐었나 보군.”


알고 봤더니, 나 같은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다.​

원래부터 외지인 상대로 통수치는 동네로 유명하단다.

뭣 모르고 갔다가 사라지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고.


‘어쩐지 춘식이들이 자주 들어오더라.’


깊은 산속에 무슨 사람을 그렇게 잡아 오나 했더니, 포졸들이 도왔나 보다.

이럴 줄 알았다면, 다른 곳으로 떠났을 텐데.

노상 자리를 사겠다고 전 재산을 쏟아부은 게 아까워죽겠다.

내가 억울한 표정으로 한숨만 푹푹 내쉬자, 범죄자가 위로했다.

“너무 그러지 마쇼. 어쨌건 몸 성히 빠져나왔으니 된 거 아니오? ​그래도 필요한 물건은 잘 챙겨 온 듯한데?”

그러면서 내 오른손의 보따리에 시선을 보냈다.

바로 공구통. 내 생명줄에 말이다.

지금도 그렇고, 춘식이 때도 그렇고, 이 공구통만큼은 꼭 챙겼던 나다.


‘이게 없었으면 진작에 굶어 죽었어.’


그런 의미에서 범죄자의 눈빛은 내게 생명의 위협을 줬다.


“….”


놈의 눈빛은 어딘가 심상치 않았다.

아마 아까 전에 반지를 팔았다는 말이 놈의 관심을 끌었을 거다.


‘괜히 떠벌려서는-’


뒤늦게 후회했지만, 소용없었다.

포졸에게 쫓겼던 탓에 제정신이 아니었으니까.


반지.

​모르는 놈이 들으면, 돈이 꽤 많다고 착각할 수 있는 단어.

심지어 보따리를 갖고 있으니, 자연스럽게 호기심을 자극했으리라.


-스윽.


나는 경계 어린 눈초리로 놈에게서 보따리를 감췄다.

헌데, 내 행동이 놈의 심기를 거슬렀나 보다.

대놓고 경계하는 내 모습에, 놈의 눈썹이 꿈틀거리며 목소리가 커진 거다.

“아니, 내가 뺏겠다는 것도 아닌데, 그 눈빛은 뭐요?!”


그러더니, 허리춤의 칼을 잡았다 놨다 하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여차하면 칼이라도 뽑겠다는 태도였다.

‘제길, 힘없는 놈은 어디 서러워서 살겠나.’

사방이 물로 가로막힌 이 상황에서 도망칠 곳은 어디도 없었다.

게다가 나는 무공은커녕, 변변찮은 무기도 없는 양민에 불과했다.

​이런 상황에서 범죄자와 싸운다?

차라리 강물로 뛰어드는 게 생존율이 높았다.


‘0%나 1%나 거기서 거기겠지만.’


이 상태에서 싸워 봐야 나만 손해였다.


“흠흠, 잘못 보셨습니다. 아까 전의 포졸들을 생각하니 분통이 터진 거지요. 에라잇, 뇌물만 처먹는 쓰레기 자식들 같으니라고!”

자고로 범죄자에게 있어서 포졸은 적이나 마찬가지인 법.

내가 포졸을 욕하자, 놈의 표정이 누그러졌다.

그럼에도 놈의 눈길은 여전히 내 보따리를 향했지만 말이다.


‘쉽게 포기할 것 같지가 않은데.’


지금 어찌어찌 넘어간다 해도 소용없었다.

놈이 생각을 고쳐먹고 칼을 휘두르면, 나는 죽은 목숨이니까.

그랬기에 먼저 선수를 쳤다.


“마침 팔다 남은 물건이 몇 개 있긴 한데, 보여드릴까요?”​

“응? 그래도 되는 거요?”


내가 숨겼던 보따리를 앞으로 꺼내자, 놈이 눈을 반짝였다.


‘되겠냐? 그냥 네놈이 난리 칠까 봐 그런 거지.’


나는 속으로 놈을 욕하면서도 미소를 잃지 않았다.

춘식이 생활 동안 배웠던 삶의 지혜였다.

* * *


“자, 한번 보시죠.”

-스르륵.

보따리가 풀어헤쳐지며, 안에서 공구통이 튀어나왔다.

시대에 맞지 않는 현대의 물건.

이곳에서는 귀물이나 다름없었다.

그걸 보였으니, 이제 범죄자 놈이 난리 칠 일만 남았다.

하지만.


‘그랬다면 춘식이 시절에 진작 뺏겼지.’


돈이 된다면 사람도 파는 놈들.

그런 놈들에게 공구통을 뺏기지 않은 이유가 있었다.


‘이 공구통은 내 눈에만 정상적으로 보이거든.’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으나, 다른 사람 눈에는 공구통이 그냥 평범한 상자로 보였던 거다.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그런 상자 말이다.


“….”

역시나 놈은 귀물을 보고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나는 그 상태에서 공구통을 열어제꼈다.

-덜컥.

그러자 귀금속 제작에 필요한 공구들이 튀어나왔다.

가스 토치, 부탄가스, 태장대, 벼름망치, 디바이더, 대줄 등등.

이 시대에서는 만들 수도, 구할 수도 없는 물건들.

누구나 탐욕을 드러내기 충분한 것들이었다.


“….”


하지만 이번에도 범죄자는 아무 반응이 없었다.

왜냐하면, 이 물건들 역시 남들 눈에는 쓸모없는 나무토막으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나밖에 보이지 않는 물건들.

특별함은 이게 다가 아니었다.


‘소모되지 않아.’


공구통 안에는 부탄가스 외에도 은땜, 붕사 같은 소모성 물건도 많았다.

꾸준히 사용하면 한 달도 안 돼서 소모되는 물품들.

그런데 뚜껑을 닫았다가 열기만 하면, 소모된 물건들이 모두 복구됐다.

사실상 현대의 도구를 무한정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아쉽게도 단점이 있지.’


[귀금속 제작 외 목적으로 공구 사용 불가.]


춘식이 시절 무수한 실험 끝에 깨달은 조건이었다.

만약, 다른 목적으로 사용이 가능했다면, 춘식이 생활을 더 빨리 청산했을 거다.


“고작 이런 걸 들고 다니오?”


범죄자는 쓸모없는 나무토막을 보고, 혀를 찼다.

마치 별난 놈 다 보겠다는 표정.

혹시나 돈 될 게 있나 싶었던 눈빛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이게 집안 가보라 어쩔 수가 없습니다. 언제나 몸에서 떼지 말라는 조상님의 유언도 있었고요.”


집안 가보는 무적이고, 유언은 신이었다.

이 시대에서 가보와 유언을 지키는 것은 상식이었으니까.

오죽하면, 그 악랄한 인신매매 조직도 가만히 냅뒀을까.


‘사실 돈이 안 되니까 그런 거지만.’


범죄자는 저딴 가보도 있냐고 중얼거리며, 다른 것을 요구했다.


“쯧, 반지나 보여주쇼.”


공구에서 완전히 흥미를 뗀 놈이 미약한 기대감을 드러냈다.

자고로 반지라 하면, 은반지나 옥반지가 정석이었으니까.


어쩌면 보는 순간, 눈이 뒤집혀서 달려들지도 몰랐다.

그럼에도 나는 덤덤하게 반지를 꺼냈다.


“…뭐야, 이건.”​​


잔뜩 기대했던 놈의 실망스런 목소리가 들렸다.​

내가 꺼낸 물건은 돈도 안 되는 나무 반지였으니까.

뭐, 은반지? 옥반지?


‘자유를 되찾은 세공 춘식이한테는 그딴 게 없어요. 이놈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