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연 시집 <당근밭 걷기>와 함께

여름. 걷기. 시

당근밭 걷기
안희연 지음

안녕하세요. 여름 입구에서 안부를 전합니다. 잘들 걷고 계신가요. 벌써부터 그늘을 찾아 두리번거리고 손차양을 만들어 부신 눈을 쉬게 하는 분들도 계실까요. 지난 4년간 작업한 시들을 한 데 묶으며 저도 잠시 숨을 고르는 날들이네요. 굴곡이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모든 시간은 어렵다는 것을 깨닫는 요즘이지만, 그래도 한 권의 시집이 있어 덜 외로워질 수 있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얼마 전, 면적과 부피를 가진 모든 것들은 소리를 흡수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벽도, 식물도, 사물도, 당연히 인간도 그러하다고요. 그렇게 흡수된 소리들은 어디로 가는 걸까요? 몸 안에 남아 있을까요, 몸을 통과해 훌훌 흩어질까요? 일부는 남고 일부는 사라질까요? 모쪼록 저는 당신에게 맺히는 시를 쓰고 싶군요. 당신 안으로 흘러들어 당신의 뿌리와 잎사귀를 적시는 말이 되고 싶군요. 시인들은 이런 불가능한 꿈을 꾸는 존재들이랍니다.
그러니 이 계절, 어떤 시집이든 펼쳐 읽어주세요. 우리의 지난한 걷기가 시로 말미암아 조금은 가벼워지고 다채로워지기를 기원합니다.

안희연이 시 읽는 독자에게 전하는 이 계절의 한마디

구두를 신고 잠이 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시인은 잠속을 걷는다. 꿈에서 깨어나도 여전히 꿈속인 세계, 꿈밖으로 나가는 문을 어디서도 찾을 수 없을 때, “불구두와 바람샌들을 한 짝씩 신고 여자는 유령처럼 벽을 통과했다”(「지붕 위에서 찾아가는 세계지도」). 지금껏 당신이 상상해온 그 모든 잠과 꿈을 능가하는 몽유의 시집. 나를 잠시 잃어버리고 싶을 때 나는 어김없이 이 시집을 펼친다.

안희연이 추천하는 걷기와 어울리는 시집

내가 이 세상에 온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는 누구의 무슨 심부름을 하기 위해 하루하루 바쁘게 걸음을 옮기는 걸까. 시인은 “전달책 k”이자 “소문자 k”를 통해 ‘나’라는 임무를 수행중인 자의 서글픈 속내를 털어놓는다. “거기까지 가는 길은 아는데 / 왜 가는지는 모”르는 삶의 일들은 우리를 자주 “울적”하게 하지만(「무슨 심부름을 가는 길이니」), 그래도 이 시집과 함께라면 우리의 심부름이 외롭기만 하지는 않으리라. 시인이 걷는 길의 다른 이름은 아마도 ‘시간’이 아닐까.

안희연이 추천하는 걷기와 어울리는 시집
생명력 전개
임승유 지음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고 멀리까지 다녀온 기분을 느끼고 싶다면 단연 임승유의 시집이다. 임승유의 시는 우리 안의 가장 낯선 ‘나’를 발견하게 한다. “뒷문을 열고 나간 것까지는 기억”하는데 내가 왜 여기에 도착해 있는지는 알 수 없는 기분에 사로잡힐 때, “이런 나를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고 거의 울먹이는 심정이 됐을 때”(「소매가 긴 푸른 셔츠에 검정 바지」) 비로소 찾아오는 얼굴들. 그 얼굴들로 말미암아 우리는 다시 일어설 수 있다. 시인은 그것을 생명력이라 부른다. 빛나는 것, 이글거리는 것, 사방으로 뻗어나가는 어떤 것. 걷는 동안, 걷는 우리에게서 저절로 발산될 바로 그것.

안희연이 추천하는 걷기와 어울리는 시집
당근밭 걷기
안희연 지음
10,800원(10%) / 600원
여름 언덕에서 배운 것
안희연 지음
9,900원(10%) / 550원
밤이라고 부르는 것들 속에는
안희연 지음
8,100원(10%) / 450원
당신이 좋아지면, 밤이 깊어지면
안희연 지음
13,500원(10%) / 750원
단어의 집
안희연 지음
13,500원(10%) / 750원
너의 슬픔이 끼어들 때
안희연 지음
9,900원(10%) / 550원
당신은 나를 열어 바닥까지 휘젓고
안희연 지음, 윤예지 그림
11,880원(10%) / 660원
[큰글자도서] 단어의 집
안희연 지음
29,000원 / 87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