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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클린트 이스트우드 (Clint Eastwood)

본명:Clinton Eastwood Jr.

성별:남성

국적:아메리카 > 북아메리카 > 미국

출생:1930년, 샌프란시스코 (쌍둥이자리)

직업:배우, 감독

기타:로스앤젤레스시립대학 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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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5월 <[4K 블루레이] 아메리칸 스나이퍼 : 초도한정 슬립케이스 (2disc: 4K UHD + 2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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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트우드는 1930년 미국 공황기에 떠돌이 노동자 생활을 하던 부모 밑에서 자랐다. 1948년 오클랜드 공업전문학교를 졸업한 후 벌목장 인부, 소방수 등 여러 직업을 전전하였다. 1949년 해군에 입대한 그는 인생에 있어 중요한 두 가지 사건을 겪게 된다. 첫번째는 앞으로 아내가 될 매기 젠슨을 만나게 된 것이고 두번째는 비행기 사고로 거의 목숨을 잃을 뻔한 것이다.

군대에서 수영교관 노릇을 하기도 했던 이스트우드는 공부를 계속할 것을 결심, 로스엔젤레스 시티 대학에 입학하여 경제학을 전공한다. 그리고 로스엔젤레스에 있는 유니버설 스튜디오에서 오디션을 보고 합격한 후, 1954년부터 배우 생활을 시작하였다. 이스트우드가 통나무를 지고 가는 모습이 강인해보여 합격했다는 후문이 있을 정도로 그는 강인한 모습을 지니고 있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처음에는 유니버설 스튜디오에서 트럭 운전을 하면서 단역 배우로 영화에 출연해 연기 경력을 쌓았다. 그후 몇 년 동안 주로 B급영화와 TV의 단역을 전전하던 그는 일정한 수입을 얻게 되자 메리 젠슨과 결혼한다. 이스트우드는 59년 TV 시리즈 <로하이드(생가죽)>에 처음으로 주연으로 출연하면서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로하이드>(1959∼1966)는 소떼를 모는 카우보이들의 이야기였는데, 여기서 그는 강인한 남성의 이미지를 보여주며 이후 '서부영화'하면 대중들이 그를 떠올리는 계기를 만들게 된다.

그리고 그는 세르지오 레오네와 함께 만든 <황야의 무법자> <석양의 무법자> <속 석양의 무법자> 등 소위 마카로니웨스턴 3부작이 성공하면서 국제적인 스타로 떠오른다. 찡그리며 담배 피는 그의 모습은 서부영화의 새로운 아이콘으로 부상한다. 악당을 두려워하지 않는 비정한 서부 사나이로 대변되는 이스트우드의 이미지는 지금까지 그의 트레이드 마크이다. 고전적 서부극의 근엄함을 완전히 뒤집으며 과장된 제스처로 가득찬 마카로니웨스턴의 스타로 출세했다는 점은 이후 그의 영화세계에 중요한 바탕이 된다.

서부극의 영웅이었던 이스트우드는 70년대 들어 서부극이 쇠퇴하자 돈 시겔의 <더티 해리>(1971)에서 주인공인 해리 캘러핸을 맡아 액션스타로서 이미지를 쇄신하게 된다. 망나니 형사의 원조인 <더티 해리>는 그의 마초적 이미지를 더욱 강하게 각인시켰다. 매그넘으로 범죄자들을 무차별 사살하는 거친 형사 '더티 해리'는 아직도 대중들에게 가장 인상적으로 남아 있는 이스트우드의 모습이기도 하다. 그렇다 해도 이스트우드는 오늘의 액션스타 이미지와는 완전히 달랐다. 파시스트적이며 편집광적인 해리는 60년대적 방종에 대한 미국 기성질서의 광적 혐오감을 서부극의 무법자 캐릭터에 주입한 매우 모순적이고 함축적인 캐릭터였기 때문이다. 이스트우드는 이 캐릭터를 옹호하는 발언을 자주 했고 로널드 레이건과의 친분까지 구설수에 오르면서 진보적 비평가들로부터 비난을 사기도 했다. 여하튼 <더티 하리> 시리즈는 이스트우드의 스타 이미지를 더욱 복합적으로 만들면서 가장 인기있는 시리즈 영화의 목록에 올랐고 1988년까지 5편의 시리즈로 만들어졌다.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시겔 감독으로부터 감독이 되라는 권유를 받게 되고 이에 그는1971년 맬파소 프로덕션이라는 제작사를 차린다. 맬파소 프로덕션을 통해 그는 1973년 사이코 스릴러 <어둠 속에 벨이 울릴 때(Play Misty For Me)>로 감독 데뷔해 이후부터는 감독과 배우로 활동한다. 자신이 주연으로 참여하기도 한 <어둠 속에 벨이 울릴 때>는 매일 같은 음악을 요청하는 한 여인과 DJ의 심리게임을 매우 세련되게 그린 스릴러로, 중년과 노년에 이르는 성찰의 과정을 보여주는 영화였다.

이후,클린트 이스트우드는 배우보다는 감독으로서 명성을 쌓았다. 감독으로서 그는 돈 시겔이나 세르지오 레오네 등 함께 작업했던 감독에게 많은 것을 배웠다. 두 감독의 방식은 이스트우드의 절제된 연기 스타일을 만들었고 그의 영화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화이어 폭스>(1982) <서든 임팩트> (1983) 등의 흥행 액션작들을 낳으며 꾸준히 연출을 이어가던 그가 작가 감독으로서의 역량을 인정받게 된 작품은 <페일 라이더>(1985)였다. 금광채굴마을에 찾아든 정체불명의 성직자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이 기묘한 서부극은 형식이나 스타일이 두드러지지 않지만 캐릭터의 깊이를 이끌어내는 사색적 연출이 돋보였다.

전설적인 재즈 뮤지션 찰리 파커의 일대기를 영화화한 <버드>(1988)는 흥행, 비평 양면에서 모두 큰 성공을 거두었고 이스트우드가 인물을 그려내는 힘이 일정 정도 경지에 올랐음을 보여줬다. <추악한 사냥꾼>에 이르면 그 점은 더욱 확실해진다. 존 휴스턴 감독이 <아프리카의 여왕>을 만들 당시의 에피소드를 재구성한 <추악한 사냥꾼>은 예술가의 내면과 허위의식을 예리하게 관찰한 수작이었다.

그의 이름을 명실상부한 거장의 반열에 오르게 한 작품은 아카데미 작품상 및 감독상 수상작인 <용서받지 못한 자>(1992)였다. 자신이 출연했던 서부극의 관습을 뒤집은 이 영화에서 이스트우드는 현대 미국사회에 대한 냉정한 통찰을 드러내는 데 그치지 않고 자신의 영화적 이력에 대한 고통스럽고 깊은 명상에 잠겨 있는 것처럼 보였다. 장르영화의 힘, 그것의 엄청난 대중성을 가능케 한 배후의 구조와 이데올로기, 그것을 통해 스타에 이르게 된 자신 모두가 이 성찰의 대상이 되고, 이 도저한 명상적 자세가 영화 전체에 불가해한 위엄을 부여한다.

그는 영화를 떠나 잠시 외도를 하는데, 1986년부터 2년간 카멜시(市)의 시장 직을 역임한다. 이후, <사선에서>(1993)에 배우로서 출연하였고 탈옥수의 여정과 그와 소년과의 서글픈 우정을 그린 <퍼펙트 월드>(1993)는 단순한 휴먼드라마처럼 보이지만 미국사회의 폭력성과 이상사회에의 동경을 가슴저리게 묘사한 수작이었다. 동명 소설을 영화화 한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1995)는 두 전작의 무게에 비하면 마치 휴식 같은 소품이었다. 그는 잔잔하고 감동적인 사랑 이야기를 담담하게 연출, 메릴 스트립과 직접 로맨스 그레이 커플을 연기하기도 하며 한국 팬들을 감동시켰다. 한 도둑이 거대한 국가적 음모에 어쩔 수 없이 개입해가는 과정을 그린 <앱솔루트 파워> (1997) 역시 주류 액션영화의 공식을 전혀 거스르지 않은 대중성 강한 장르영화. 국내에 전혀 알려지지 않고 비디오로만 조용히 출시된 <미드나잇 가든>(1998)에서 이스트우드의 거장으로서의 면모는 다시 확인된다. 사바나라는 작은 마을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한 기자의 눈으로 관찰한 이 영화는 반전과 스릴은 아랑곳없다는 듯 극히 느린 발걸음으로 흐르다, 마침내 이 호화롭고 잡다하고 나른하고 추악한 도시가 미국사회의 정밀한 축도임을 확인케 한다. 스타일에 전혀 의존하지 않고 이야기와 캐릭터만으로 이만큼 묵직한 의미를 전하는 감독은 적어도 할리우드에선 이스트우드 외에는 없으며, 그런 의미에서 그는 희귀한 고전적 작가다.

무엇보다, 그는 나이를 잊은 채 아직도 열정적으로 영화계에서 활동하고 있는 진정한 이 시대의 영화인이라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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