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

헤더배너
상품평점 help

이름:자크 리베트 (Jacques Rivette)

출생:1928년 (물고기자리)

최근작
2020년 3월 <셀린느와 줄리 배타러 가다>

자크 리베트(Jacques Rivette)

프랑스 누벨바그 운동의 중심 인물. 장 뤽 고다르와 더불어 누벨바그의 가장 실험적인 감독이라는 평가 받고 있다. 그는 감성적인 트뤼포나 정치적인 고다르, 지적인 로메르와는 또 다른 스타일을 보여주는데 그는 영화에 대한 냉철한 분석가였고 실험가였다. 자크 리베트는 동료인 트뤼포나 고다르, 로메르 혹은 샤브롤에 비해 매우 적은 작품만을 만들어왔지만, 문학과 연극과 회화를 가로지르는 그의 영화들은 누벨바그 작가들 중에서 가장 실험적인 세계를 보여주고 있다. 루앙에서 태어나 다른 누벨바그 감독들처럼 파리의 시네마테크에서 영화를 공부한 리베트는 <파리는 우리의 것>(60) 데뷔했다. 오늘날의 관점에서도 혁명적인 것들과 문학적인 요소들이 멋지게 조화를 이루고 있는 이 작품은 그러나 당시의 관객들에게는 외면을 받았다. 그의 실험성은 12시간 40분짜리 영화 <아웃 원>(71)를 만들어내는 결과로 나타난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극장에서 상영될 수 없었고, 결국 225분짜리 축약판인<아웃 원/유령(Out 1:ombre)>(1974)을 내놓게 되지만 이 역시 내러티브에 대한 과도한 집착으로 관객들이 외면하였다.
영화를 만들기 시작한 지 거의 10년 만에 만든 <미치광이 사랑(L'Amour fou)>(68)에서야 겨우 대중적인 인기를 얻기 시작하지만 그때는 이미 누벨바그가 쇠퇴하던 시기였다. 이미 동료들은 현장을 떠나 자신의 세계로 칩거해 버린 것이다. 거꾸로 선 누벨바그의 역사를 쓰는 듯한 리베트는 <북쪽에 있는 다리>(81), <누드모델>(90), <잔다르크>(93) 등의 작품을 통해 끝없는 영화 실험을 펼친다. 그러나 그가 선택한 기법들은 프랑스에서조차 관객들의 환영을 받지 못하고 외면당하기 일쑤였다. 이미 헐리우드의 물결에 세례를 받은 장 자크 베넥스나 뤽 베송이 판을 치는 영화 판에서 누벨바그의 실험가가 설 자리는 없었던 것이다. <알게 될 거야> 보도자료: 자끄 리베뜨는 '까이에 뒤 시네마'의 비평가들 중 처음으로 영화 연출을 시작했으며, 75세의 나이에도 영화와 인생 그리고 그 접점을 인식하는 영화에 도전하고 있다. 리베뜨는 주로 작품의 주제를 표현하기 위해 연극을 인용하곤 한다. 셰익스피어를 인용한 <파리는 우리의 것>에서 피란델로를 인용한 <알게 될 거야>에 이르기까지 그는 허구의 연극과 실제의 삶 사이의 갈등이라는 주제를 계속해서 이야기해 왔다. 주된 관심은 '창작과정 그 자체'이며, 리베뜨의 스타일은 즉흥적 연출과 구조에 대한 실험으로 특징지어진다. 그 결과, 그의 영화는 지적이면서도 예측할 수 없는, 여전히 진행중인 탐색의 장이다.
1928년 프랑스 루앙에서 태어난 자끄 리베뜨는 영화를 만들기 위해 1949년 파리로 왔다. 이미 20분짜리 단편인 <어느 곳에나>를 만들었고, 시네마테크를 드나들며 장 뤽 고다르, 에릭 로메르, 끌로드 샤브롤 등의 씨네필들과 만나게 된다. 1952년에는 '까이에 뒤 시네마'에서 글을 쓰기 시작한다. 이 때가 바로 누벨바그 비평가들이 혁명적인 영화를 위해 기존의 영화 관습에 반대하고, 영화는 작가가 자신의 비전을 실현하기 위해 만든다는 주장을 펼치며 새로운 영화를 만들게 된 시기이다. '까이에 뒤 시네마'에서 그는 알프레드 히치콕, 오토 프레밍거, 하워드 혹스와 같은 뉴웨이브 히어로들과의 인터뷰와 비평으로 필명을 날렸다.
1957년 리베뜨는 드디어 그의 첫 장편 <파리는 우리의 것> 촬영을 시작한다. <파리는 우리의 것>은, 셰익스피어의 <페리클레스> 공연을 연습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공연 제작을 다룬 영화들 중 첫 번째인 이 영화에는 리베뜨 영화의 기본요소 대부분이 담겨 있다. 미스터리 내러티브에의 열중, 허상과 현실 그리고 거짓과 진실에 관한 의문을 제기하는 예술로서의 연극이라는 환상이 그것이다. 1966년 작 <수녀>는 많은 논쟁과 검열 통과를 위한 수정을 거치는 등 우여곡절 끝에 개봉했지만 리베뜨에게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가져왔다. 그리고 1968년에 만들어진 <미친 사랑>에서는 연극과 인생, 환상과 현실 간의 갈등에 관해 좀더 집중적으로 탐구한다. 이 작품을 통해 리베뜨는 영화 내러티브 이론을 효과적으로 적용했다는 호평을 받으며 감독으로서의 입지를 굳혔다. 다음 작품 <아웃 원>에서 리베뜨는 극단적으로 자유롭게 연출을 펼쳐나간다. 40여 명의 배우들에 의해 즉흥적으로 연출된 이 16mm 영화는, 30시간에서 12시간 40분으로 편집되었지만 상영 시간이 길다는 이유로 TV에서 거절당하고 1971년 단 한 번 상영되었을 뿐이다. 할 수 없이 리베뜨는 다음 해 4시간 20분 짜리로 만든 재편집 판 <아웃 원: 유령>을 발표한다. 같은 해 만들어진 <셀린느와 줄리 배타러 가다>는 리베뜨의 가장 대중적이고 기념비적인 작품 중 하나로 스릴러, 코미디, 미스터리가 섞여있으며 헨리 제임스와 루이스 캐롤의 작품에 뿌리를 두고 추억과 환상을 이야기한다. 뒤이어 만들어진 <이중적인 여자>와 <북서풍>은 두 여자의 이야기를 그린 시리즈로, 리베뜨는 영화와 연기 사이의 관계에 대한 새로운 접근을 시도하며 1970년대를 마무리한다. 1980년대에 들어서도 리베뜨는 연극과 문학을 아우르는 관심과 즉흥 연출, 배우들의 즉흥 연기에 대한 실험으로 일관된 창작의지를 보여준다. 그리고 1991년 작 <누드 모델>로 드디어 깐느 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대상을 받음으로써 작가로서의 역량을 다시금 확인한다. 오랫동안 작업을 쉬고 있던 화가에게 젊은 부부가 찾아오고, 화가는 젊은 부인을 모델로 다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누드 모델>은 회화와 영화를 가로지르는 이미지의 재현과 창작 과정을 통해 감독 자신의 예술적 관심사를 그대로 투영해낸 작품이다. 이후 리베뜨는 1993년 '잔다르크에 관한 2부작'을 완성한다. 감상적이지 않은 다큐멘터리적인 접근으로 칼 드레이어, 로베르 브레송에 이어 또 한 편의 새로운 잔다르크 이야기를 만들어낸 것이다. 이어서 그는 MGM 뮤지컬과 자크 드미에게서 영감을 얻은 세 여자에 관한 뮤지컬 코미디 <연약한 기반>을 만들어 파리로 돌아왔으며, 일렉트라 신화를 담고 있고 스타일 면에서 히치콕의 스릴러와 닮아있는 <비밀 방어>, 2001년 작 <알게 될 거야>까지 지속적인 작품 활동을 해오고 있다. 그리고 2003년, 75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완성해낸 신작 <마리와 줄리앙 이야기>가 지난 11월 파리에서 화제 속에 개봉되었다.
프랑수아 트뤼포는 "누벨바그는 리베트 덕분에 시작되었다"라고 그에게 찬사를 보냈다.  

대표작
모두보기
가나다별 l l l l l l l l l l l l l l 기타
국내문학상수상자
국내어린이문학상수상자
해외문학상수상자
해외어린이문학상수상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