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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프랑수아 트뤼포 (François Truffaut)

본명:Francois Roland Truffaut

성별:남성

국적:유럽 > 중유럽 > 프랑스

출생:1932년, 프랑스 파리 (물병자리)

사망:1984년

직업:영화감독

최근작
2021년 11월 <두명의 영국 여인과 유럽대륙 : 리마스터링>

프랑수아 트뤼포(François Truffaut)

1932년 2월 6일 파리에서 출생. 그의 부친은 건축일에 종사했고 모친은 여비서였다고 하나 일설에는 그가 사생아였다고 할 만큼 불행한 가정에서 부모의 정을 받지 못하고 자랐다. 이 시절 어머니로부터 받은 심리적 상처는 후일 그의 작품에 나타나는 신비스런 존재 혹은 공포스러운 존재로서의 독특한 여성관에 영향을 끼치게 된다. 학교와 가정에서 소외당한 트뤼포에게 극장은 현실로부터의 탈출구인 동시에 새로운 희망을 제시해주는 천국과 같았다. 외부세계와 차단된 영화 속에서 그는 학교에서 배우지 못했던 새로운 세계를 발견하게 되고 이 때 그가 섭렵한 까르네(M.Carne), 쿠루죠(H.G.Clouzot), 르노와르(Jean Renoir) 등의 영화들은 그의 영화세계에 큰 영향을 끼쳤다. 문제아였던 그는 십대 시절에 시네 클럽을 운영하다가 실패했으며 이 때 진 빚 때문에 수감되기도 했다. 스물 한 살 때부터는 <카이에 뒤 시네마>를 중심으로 영화 평론을 썼다. 이듬해 논문 <프랑스 영화의 어떤 영향>을 발표, 처응으로 작가주의를 정식화한 '작가 정책politique de auteurs'을 주장했다.

광적으로 영화에 몰입하며 영화관련기사들을 스크랩하고 꼼꼼하게 감상일지를 작성하는 등 영화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각별했던 크뤼포는 15세때 영화모임을 결성하는데 그는 이 영화모임을 '영화중독집회' (Cercle Cinemane)라 명명할 정도로 영화광으로서의 의욕을 보여주지만 야심만으로 시작한 이 모임은 시설의 미비와 당시 앙드레바쟁(Andre Bazin)이 운영하는 '까티에 라땡 씨네클럽'(Cartier Latin Cine Club)과의 경쟁으로 실패한다. 그러나 이 시기에 바쟁과의 극적인 만남이 이루어지게 된다. 영화에 대한 그의 애정을 못마땅하게 여긴 아버지에 의해 트뤼포는 감화원에 수감되나 바쟁은 그가 감화원에서 나올 수 있도록 도와주고 이후 그의 일생동안 트뤼포의 정신적인 아버지로서 그를 격려하고 이끌어준다. 바쟁의 보호 아래 장 뤽 고다르, 자크 리베트, 끄로드 샤브롤 등 당대 예술인들과 교류하며 <까미에 뒤 시네마>(Cahiers du Cinema)誌에 글을 기고하는 등 평론가로 두각을 나타내게 된다.

스물일곱 살 때인 1959년 <400번의 구타>로 데뷔, 이 해 칸 영화제 감독상을 받았다. 이후 <피아니스트를 쏴라>(1960), <쥘과 짐>(1961), <아메리카의 밤>(1973) 등 문제작을 발표했다. 장 뤽 고다르, 자크 리베트, 클로드 샤브롤, 에릭 로메르와 함께 누벨 바그를 대표하는 감독으로 알려져 있다. 1984년 10월 21일 암으로 타계했다.  

대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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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내역
1984년 제10회 LA비평가 협회상 특별공헌상
1981년 제6회 세자르영화제 작품상 <마지막 지하철>
1975년 제40회 뉴욕 비평가 협회상 각본상 <아델 H 이야기>
1974년 제27회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 데이빗 린 상 <사랑의 묵시록>
1974년 제8회 전미 비평가 협회상 감독상 <사랑의 묵시록>
1970년 제4회 전미 비평가 협회상 감독상 <훔친 키스>
1959년 제12회 칸영화제 감독상 <400번의 구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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